미륵불 시대의 금강경 3부
싸이파워psy-power
지난번 강의에서 알았듯이 우리 마음은 원래 무극과도 같은 상태가 그 본심인데 여기에서 뻗어나가는 작용과 끌어오는 작용이 있어 끌어오는 작용이 눈앞의 모든 형체를 끌어오면 그것이 곧 <상相>이 되어 형체에 머물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상>은 모양이나 형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체를 보고 그것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의식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생각하고 쓰는 마음이 곧 이것이며 이것을 <자의식>이라고 합니다.
또 우주의 원칙이나 작용을 알아 우리의 인생을 개척하는 것이 인생 공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의식이 이해한 그 이해를 믿고 자의식대로 하면 그 결과는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의식은 본심인 무극 상태, 즉 제로지대에서 뻗어 나온 힘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의식이 원하는 것을 <영혼>에 각인을 시키면 영혼이 그 원하는 것을 현실세계에 끌어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의식이 원하는 것을 현실에 끌어오는 능력을 『싸이파워』라고 합니다.
아직은 사람들이 『싸이파워』를 잘 몰라 그렇지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은 바로 『싸이파워』가 이룩한 결실입니다. 기적과도 같았던 예수의 모든 능력도 『싸이파워』요, 기도하라는 그 기도도 결국 구식 『싸이파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주의 작용인 『싸이파워』를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몰라 미신을 믿게 되고, 허황된 미신의 여러 가지 방법도 결국 그렇게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바로 『싸이파워』 때문입니다. 조상이나 귀신이 도와줬다는 그 현상도 알고 보면 그렇게 믿고 행한 자신의 『싸이파워』가 일으킨 결과인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복>도, 알고 보면 우주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고 평소에 된다고 믿는 <풍요로운 마음>이 불러들인 『싸이파워』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영혼>이 작용하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지만, 문제는 안타깝게도 영혼이 무의식이라 생각한 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이와 같은 이유에서 수양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여러 가지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수련법 중 <명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명상도 자의식이 아는 대로 행하면 그 명상은 이미 명상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바로 마음의 제로지대가 스스로 일어나는 작용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작용하던 자의식을 쉬고 마음의 제로지대가 스스로 작용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그 상태를 느끼기 위한 연습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곧 <깨달음>은 아닙니다.
진정한 보시
그럼 오늘은 세 번째 금강경 강의를 하겠습니다.
復次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부차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또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어떤 법에도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여기서 보시는, 스스로 우러나오는 자비심을 통해 남에게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보시는 재물뿐만 아니라 상대를 위한 모든 것 전부를 말합니다. 지금의 내 강의도 여러분에게 <복>이 된다면 이것 또한 보시인 것입니다. 바로 <법> 보시이죠.
단, <보시를 행하면 복을 받는다>는 법칙이 있어 그 법칙을 위해 보시를 하면 안 된다고 지금 석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所謂 不住色 布施 不住聲香味觸法 布施.
소위 부주색 보시 부주성향미촉법 보시
須菩提, 普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수보리,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
이른바 형상에 머물지 말고 보시할 것이며, 소리, 냄새, 맛, 감촉과 온갖 법에도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이렇게 보시하여 현상에 머물지 말아야 하느니라.
결국 보시는 <나를 위해서>나 <나 때문에> 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단지 상대를 위해서 상대에 필요한 것만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대를 위한다 하여 또 무조건 해서도 안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필요>는 보지 못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눈에 예쁜 사람이라 하여 보시하고 듣기 좋다고 하여 보시하면 그것은 진정한 보시가 아닙니다. 특히 부처가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고 부처님께 보시하는 그 재물은 부처를 위한 보시라기보다 차라리 자신을 위한 <욕심>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자신의 부탁을 위해 보시하면 그 보시는 보시가 아니라 차라리 청탁인 것입니다. 진정한 보시란 이렇게 아무런 선입견 없이 상대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베푼 그 배려는 풍요가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빵>을 베푼 자는 그 빵이 자신의 영혼에 각인이 됩니다. 상대를 위해 <법>을 베푼 자는 그 법이 자신의 영혼에 각인이 됩니다. 상대를 위해 <목숨>을 지켜준 자는 그 목숨이 자신의 영혼에 각인이 됩니다. 그러면 결국 영혼은 그 각인된 형상을 자신에게도 나타나게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풍요로운 자는 그 인생이 풍요로워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법>을 알아 일부러 그렇게 하면 그것은 곧 <법>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법이나 현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 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하이고 약보살 부주상 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須菩提, 於意云何. 東方虛空 可思量不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不也. 世尊
불야. 세존
왜냐하면 만일 보살이 현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 허공을 생각으로 다 헤아려 알 수 있느냐? “알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결국 이렇게 남을 위해 베푼 보시는 그 <베풂>이 영혼에 각인이 되어 자신에게 끝없는 풍요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크기는 동쪽 하늘의 허공처럼 <얼마나>를 가늠하기 힘들게 무한히 큰 것입니다.
須菩提, 南西北方 四維上下虛空 可思量不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不也 世尊
불야 세존
須菩提, 菩薩 無住相布施福德 亦復如是 不可思量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복덕 역부여시 부가사량
須菩提, 菩薩 但應如所敎住
수보리, 보살 단응여소교주
수보리야, 남서북방과 너의 아래 위 허공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있겠느냐? “알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현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많으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다만 마땅히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내는 것은 영혼이지만, 그렇게 원하고 만드는 것은 바로 자의식입니다. 자의식이 간절히 원하면 그 원하는 것이 영혼에 각인되어 영혼은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킬 뿐입니다. 때문에 가진 것이 없고 된 것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자의식이 간절히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스스로 원하고 바란 만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사는 필연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별로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 없다 하더라도 남에게 필요하면 빨리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의 필요가 나의 영혼에 각인되면 그것은 내가 원했던 것처럼 나에게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보시의 <복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말은 자기 자의식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부처의 말이나 나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이 옳네, 무엇이 그르네 하며 따지는 것은 결국 영혼이 이와 같은 <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석가는 마땅히 가르친 대로 머물라 하는 것입니다. 말이 믿음이 가고 또 내가 말한 대로 살고 싶으면 여러분은 이와 같은 나의 설명을 아무런 의심 없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때문에 부처는 마땅히 가르친 바를 고맙게 받아들여 이것이 자신의 인생이 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보시는 결국 내 것을 남에게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나의 영혼을 통해 세상에 창조하듯이, 남이 필요로 하는 것도 나의 영혼을 통해 창조하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창조의 범위는 전 우주와 같으며 결국 이렇게 동서남북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자의식의 욕심은 한계가 있지만 영혼의 능력은 머무름이 없는 묘한 작용인 것입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나의 영혼을 통해 성취하듯 남이 필요한 것도 나의 영혼을 통해 성취하면 그것이 바로 무한히 큰 복덕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부처의 말이나 나의 뜻을 따라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지금 금강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말, 좋은 뜻은 이렇게 가리지 말고 직접 수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법입니다.
특히 내 말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많아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더라도 자꾸 들어 이해하면 결국 그 이해가 여러분의 인생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남자들은 이렇게 따지고 이해하여 받아들이지만 여자들은 <이거다> 싶으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수들의 콘서트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강의에는 많은 여성들이 <팬>으로 몰려 있는 것입니다.
입자문명과 파동문명
우리들의 미래는 곧 파동문명 시대입니다. 지금까지의 세계는 있는 것을 보고 그 있는 것을 갖고자 하는 시대였다면 앞으로의 세계는 원하는 것을 영혼에 각인시키면 그와 같은 것이 자신의 현실에 나타나는 시대인 것입니다. 있는 것을 갖는 것은 곧 입자지만 원하는 것을 자신의 인생에 나타나게 하는 것은 바로 파동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있는 것을 차지하는 문명을 입자문명이라 하며 원하는 것을 나타나게 하는 것을 파동문명이라 합니다.
때문에 파동문명 시대에는 자동차도 직접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생각하면 자동차가 직접 그리로 가는 그런 시대가 될 것입니다. 아직 입자문명에 익숙한 여러분이 생각하면 <기적>처럼 느껴지겠지만 이제 머지않아 여러분은 그와 같은 파동문명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파동문명을 주관하는 인류의 위대한 능력을 『싸이파워』라고 합니다.
파동문명은 곧 『싸이파워』가 주체가 되어 일으키는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싸이파워』를 통해 많은 복덕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보시입니다. 내가 필요하듯 남이 필요한 것도 나의 인생에 나타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싸이파워』인 것입니다. 결국 보시는 『싸이파워』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 나타나는 <복덕>인 것입니다.